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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여행] (17) 남해 지족마을 구거리

느릿느릿 걷다 보니 아기자기한 공간 가득
오래된 건물 많아 정겨운 느낌…외지서 남해로 정착한 귀촌인들…독립서점·꽃집·소품가게 차려
소소하지만 색깔 있는 거리로…소식지 발간 등 활력 불어넣어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9년 01월 18일 금요일

오랜만에 남해를 찾았습니다. 창선면에서 창선교를 지나면 바로 있는 지족마을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죽방렴으로 유명하죠. 이곳에 오래전부터 눈여겨보던 곳이 있습니다. 남해 동부대로 1876번길. 주민들에게는 '지족 구거리'로 불리는 길입니다.

창선교와 이어지는 지방도 주변으로 하나로마트 등 큰 상점도 있고, 길 입구에는 유명 식당도 꽤 있어 휴가철이면 왁자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식당가를 지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한적하고 정다운 거리의 본래 모습이 나오죠. 구체적으로 남해삼동우체국과 삼동면사무소를 지나면서부터입니다. 거리 양편으로 나지막한 가로수와 오래된 건물이 나란하고요, 건물 저마다 옛이야기 하나쯤은 간직한 듯합니다.

▲ 남해 지족마을 구거리 옆 지족공설시장. 꾸덕꾸덕 물메기가 말라간다.

이 거리가 요즘 새로운 남해 관광 명소가 되는 모양입니다. 언젠가부터 큰 도시에서나 볼 법한 아기자기하고 재밌는 공간들이 늘고 있습니다. 독립서점 아마도책방, 음료와 소품을 파는 초록스토어, 꽃집 플로마리, 하동균 중화요리 같은 곳입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운영하고 있고요, 이미 소셜미디어로 유명해져 먼 곳에서 이곳들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역시 이 거리에 반한 게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옛날부터도 남해에 반해 귀촌한 외지인들은 더러 있죠. 그중에서도 지족 구거리를 선택한 이들. 안 물어봐도 알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 남해 지족 구거리 꽃 공방 플로마리에서 본 바깥풍경.

서울에 살다 남편과 함께 남해로 귀촌한 지 3년 됐다는 남미아(39) 씨. 그는 한 달 전에 지족 구거리에 꽃 공방 플로마리를 열었습니다. 여기서는 '프리저브드 플라워'라는 걸 만들어 파는데요, 생화를 특수처리해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3년 동안 남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을 그가 굳이 지족 구거리를 선택해 가게를 연 이유는 뭘까요.

"처음 여기 길 위에 섰는데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근사한 거리였어요. 낮으면서도 정겨운 오래된 건물이 줄지어 있는 긴 도로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고요. 꼭 영화 세트같이 멋졌어요."

남 씨 남편은 은점마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남해로 귀촌하면서 딱 즐거울 정도만 일하고, 그렇게 용돈하고 생활 유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하더랍니다. 꽃집 할 거라고 지족 구거리에 가게를 준비하면서 월세는 물론 전기요금이나 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동네 할머니들도 기웃거리며 꽃 팔아서 밥벌이가 되겠느냐 차라리 순대를 팔아라, 그러셨다네요. 남 씨도 만일을 대비해 온라인 판매를 준비하고 있었죠. 하지만, 한 달 해보니 나름 운영이 되더랍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요! 남해에 여행 왔는데 여기 지족 거리를 보러 왔다는 분도 있어요. 여행 패턴이 많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옛날에는 독일마을, 다랭이마을, 보리암 가는 게 남해 여행이었잖아요. 지금은 이 거리를 찾아오는 느긋한 여행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물론 남 씨는 가게에 앉아 한적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이게 또 지족 구거리의 매력이기도 하니까요. 그는 거리 풍광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재밌는 공간이 더 생기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 남해 지족마을 구거리 영화세트 같은 풍경. 가장 왼쪽에 있는 가게는 한 달 전 문을 연 꽃 공방 플로마리다.

▲ 지족마을 구거리 낮은 가로수와 오래된 건물. 저마다 이야기 하나씩 품고 있을 것 같다.
"크고 화려한 상점들이 들어와 번잡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하면서도 조금씩 역동적이고 막 번화하진 않지만 소소한 이야기가 있는 거리, 색깔 있고 특색있는 거리가 되어가면 좋겠어요."

플로마리에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아마도책방이 나옵니다. 아마도 최근 이 거리의 핫플레이스는 여기일 것 같네요. 거리는 한산한데 책방에 들어서니 웬걸 사람이 많습니다. 주민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인 것 같은데, 다들 개성 있어 보이네요.

아마도책방을 운영하는 박수진(30) 씨도 서울에 살다 남해에 정착했습니다. 남해로 여행을 왔다가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죠. 박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지족 거리에서 소품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 씨에게도 지족 구거리에 책방을 연 이유를 물었습니다.

"높은 건물이 없잖아요. 가로수도 아담하고, 그런 게 되게 예뻐 보였어요. 남해 다른 면 소재지에도 구거리가 있긴 해요. 그런데 여기는 길 입구에 나름 상권도 활성화되어 있고 생기가 있어요."

아마도책방은 SNS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곳입니다. 손님 중에 경북 청도에서 오셨다는 여성분이 있었는데요. 청도에서 독립서점을 낼 생각을 하고 미리 둘러보러 오셨다네요.

아마도책방 덕분인지 지난해부터 부쩍 거리에 젊은이들이 늘었습니다. 젊고 감각적인 공간도 늘고 있고요. 하지만, 이 친구들이 장사만 하는 건 아닙니다. 나름 지역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걸 찾아내서 하고 있는데요.

아마도책방과 초록스토어가 공동으로 발간하는 <월간지구>가 대표적입니다. 지족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거리 소식지를 줄인 말인데, 현재 제2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소식지에는 매번 구거리에 있는 가게 사장님들 인터뷰가 실립니다.

▲ 곧 지족 구거리 명물이 될 옥상 멍멍이들.

그런데 자꾸 월간지구 2회 표지 사진에 눈이 갑니다. 옥상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멍멍이들 사진인데요. 어디서 찍은 건지 알아보니 아마도책방 바로 옆 건물 옥상에 사는 친구들이네요. 원래 성견 두 마리(누렁이와 흰둥이라고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봤습니다.)였는데, 최근 강아지 한 마리를 더 데려와서 모두 세 마리가 있습니다. 책방을 나와 옆 건물 앞에서 멍멍이들이 나오길 기다렸지요. 그러자 누렁이가 먼저 쏙 고개를 내밀었고, 흰둥이가 이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으악, 마지막에 머리를 내미는 강아지는 너무너무 귀여웠어요. 이 멍멍이들이 곧 지족 구거리 명물이 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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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