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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20) 몽롱한 나폴리 명징(明澄)한 폼페이, 베수비오는 내가 누군인지 알고 있다

자연 앞에는 천하의 대문호도 한낱 작은 존재
오아시스 같은 도시 나폴리…첫 경험 같은 경외감 선사
2000년 전 폼페이 대재앙…후세에 기쁨된 아이러니

시민기자 조문환 webmaster@idomin.com 2018년 12월 11일 화요일

로마에서 괴테의 여장 꾸리기를 재촉한 것은 베수비오 화산이 분출했다는 소식이었다. 많은 외국인들과 여행자들이 화산 분출이 끝나기 전에 구경을 해야 한다고 떠나는 모습에 괴테는 설마 베수비오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 조금은 남겨 둘 것이라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나폴리와 베수비오 그리고 그 아랫동네 폼페이(Pompei)에 가 있었다. 자연이 주는 세기적 판타지를 그 역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는 로마가 가지 말라고 옷자락을 잡아끌고 앞에서는 대자연이 분출하여 그에게 손짓하니 어디에 보조를 맞출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출발할 때, 이미 마부는 길을 재촉했다.

◇나폴리의 낮과 밤

나의 나폴리 숙소는 스페인 거리에 있다. 적어도 200년은 넘은 아파트들로 1층은 주로 상가들이 차지하고 인도나 파키스탄 계열의 인종들이 채소나 먹거리 장사를 많이 하는데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내 방은 옥탑 방, 하지만 전망은 별 여섯 개의 초고층 호텔의 라운지보다 더 멋지다. 불과 35유로에 이런 호사라니.

5층 아파트 옥상에 가건물을 짓고 그 가건물 위에 작은 바다색 벤치까지 놓아 마치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멀리 그러나 가까이에 와 있는 베수비오산은 내게 할 말 있다는 듯 손을 흔들어 댔다. 저 멀리 소렌토만이 보이고 그 끝이 미네르바곶이라고 했던가? 한 뼘을 두고 카프리섬이다. 원을 그리듯 단조로운 해변이 오른쪽 끝부분 포실리포(Posillipo)에서 끝이 나니 그 거리가 못되어도 백리는 될 것 같다.

괴테는 나폴리에서 느낀 자연,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때로는 그림으로도 그리고 글로도 남기지만 그가 아쉬워했던 것은 자연은 늘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그 어떤 도구를 동원하여 표현했던 것 이상이었다. 해변, 만, 바다, 베수비오, 도시, 교외와 같은 것들은 늘 대문호 괴테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나폴리에서 제정신을 잃은 사람들조차 용서하겠다고 했지만 제정신을 잃은들 자연이 주는 그 경외감을 어디에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곳은 나폴리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에 있어서 로마가 지적인 세례를 주었던 성지였다면 나폴리는 자연으로부터 폭포수 같은 세례를 주었던 낙원이었다. 로마라는 마법에 붙잡혔던 그, 하지만 나폴리에 와서 뒤돌아본 로마는 잊어도 좋을 만큼의 도시로 바뀌었다. 나폴리는 휴경지와도 같고 오아시스와도 같은 도시였다. 엄청난 태풍과 지진을 겪은 후 찾아온 고요, 그것이 그의 나폴리였다.

불행하게도 나는 괴테가 본 이상의 것을 볼 수 없다. 사람에게 첫인상이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듯이 그가 겪은 나폴리에서의 자연 체험은 그에게는 '첫 경험'으로 남아 다른 것들을 보는 것에 큰 잔상으로 남기게 만들었다. 그가 일찍이 읽었던 책 <샤쿤탈라>는 그 이후 읽은 책들에도 평생 남아 다른 책 읽기와 진지한 관찰에도 더 이상 덧붙여지는 것이 없었던 경험과 같았다. 나폴리와 <샤쿤탈라>는 괴테의 시선을 교정해 준 길잡이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시선에 장애가 되었으니 무슨 말인들 더 하겠는가? 이곳이 나폴리니 그렇다. 하지만 괴테는 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나폴리요 <샤쿤탈라>다.

나는 베수비오로 가야 했다. 우선 폼페이로 가야 하는데 초행인 나로서는 그 길이 그리 만만찮아 보여서 아침 7시부터 서둘러 나갔다. 숙소에서 열 걸음도 못 떼었는데 1년쯤은 굶은 것처럼 가난해져 있는 골목길이 나타났다. 어젯밤에 그 황홀했던 시간들을 어떻게 하고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고? 마치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처럼 갈증 나고 부끄러운 얼굴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긴 있었는데 회상하기 싫은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후회 막심한 시간들, 아내와 자식들에게 얼굴 보이기 민망한 아침의 민낯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널브러진 쓰레기들, 구역질의 흔적들, 그곳에 오장육부가 흩어져 있다. 갈증으로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정신을 차리나 싶으면 또 어디에선가 나타난 술친구들이 이끌고 나가 어제의 그 환락의 골목길에서 어제는 이랬노라고, 오늘도 그러자고 옷소매를 잡아끄는 날이다.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불꽃놀이로 시끄러웠다. 그 흩어진 잔해물들도 골목길에서 나뒹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비둘기 떼만 황홀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주여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삽니다"라는 말처럼 주인들의 목구멍까지 차고 넘쳤던 것들을 감사하게 받아먹는 그들의 충정을 곁눈질로 지켜봤다.

나폴리 몬테산토역(Stazione Napoli Montesanto) 앞 작은 바는 아침부터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쓰린 속 다독거리는 남정네들로 북적거렸다. 아들의 그 쓰린 속 다스리기 위해 늙은 어머니가 며느리 몰래 아침 일찍부터 콩나물국 끓여 놓고 기다리는 심정처럼 주인장들은 '본주르노' 하면서 웃음 짓는다. 몬테산토 역에서 표를 파는 여자 역무원도 어젯밤에 먹은 것이 잘못되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거기다가 말도 얼마나 퉁명스럽게 하는지 아무래도 남편이나 남자 친구와 말다툼하고 밥은 고사하고 화장도 안하고 나온 것임이 분명했다.

▲ 나폴리 해변에서 본 베수비오. 저 미모의 산이 서기 79년에 오늘의 폼페이의 명성을 높여 놓았다.

◇폼페이와 베수비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베수비오라는 것은 알 수 있다. 10년 전에 폼페이에 여행 왔을 때 봤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두 개의 산이 붙어 있고 더 높은 산이 베수비오인데 정상 부위가 화산 분출로 움푹 들어가 있다.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산이 화산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맵시도 고운 산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화산 분출로 폼페이와 인근 도시들이 잿더미 속에 파묻혀 버렸다. 이곳들은 대부분 로마에 사는 귀족들의 별장이자 휴양지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이 도시는 여전히 호화스러운 극장과 목욕탕, 상가와 술집에서 웃음 지으며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00년 전 탁월했던 이들 이탈리아 선조들이 세계 만국인들을 위해 이처럼 짜릿한 오락거리(?)를 남겨 두고 갔다. 이 골목길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숨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즐거운 표정들로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후세에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 재앙은 찾아보기 힘들 테니.

베수비오 정상에 서면 나폴리부터 소렌토까지 곱게 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정연하다. 이 장면을 아펜니노 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지나가면서 내려다보고 있다. 아직도 매캐한 수증기가 곳곳에 솟아나는 이 화신(火神)이 언제 또 강림하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두렵고 형태 없는 것들, 언제나 거듭 스스로를 갉아먹고 모든 아름다움에 선전포고하는 이 화신을 이 땅 나폴리나 폼페이 사람들은 또 언젠가 그들 면전에서 보게 될 터이니.

▲ 베수비오에서 바라보는 나폴리만. 이곳에서 볼 때에는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시민기자 조문환

두 시간 이상 달려와 올라선 베수비오, 바로 내 발 아래가 나폴리와 폼페이다. 나폴리만에 뿌려진 수많은 건물들은 모래알 같다. 베수비오가 내게 말한다. "나는 어제 너의 일을 알고 있다"고.

폼페이역에서 몬테산토역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어젯밤의 그 화려했던 나폴리의 밤이 내 눈에 스쳐 간다. 토해 놓은 아침까지도. 밤을 잊은 나폴리의 자정, 또 한 밤이 식어 간다. 아침의 또 그 가난한 거리를 위해. /시민기자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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