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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열전] 하동군 북천면 차인순 엄니(두 번째 이야기)

"할 마음이 있으면 머시든 다 되지예"
열둘 시댁식구와 겨우 입에 풀칠
가마솥밥 짓고 고단한 시집살이
군대 간 신랑은 3년 만에 돌아와
북천면에 터 잡고 54년째 살아
남편과 함께 농기계 팔아 살림 펴
학교어머니회장·합창단 등 활동

권영란 시민기자 webmaster@idomin.com 2018년 10월 16일 화요일

"빨갱이 시절에 면이 다 탔삤어예. 우리 영감 본적이 화개면 법왕리인데 빨치산 소탕작전하면서 고마 면사무소가 다 타고 그때 영감 호적이 여동생이랑 바뀐 거야. 그래서 군대를 늦게 갔어예."

하동군 북천면 차인순(81) 엄니. 신랑은 시집간 지 한 달도 안 돼 군대 가버리고 스무 살 새각시는 친정에서는 해본 적도 없는 일을 해내야 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군 생활을 하는 신랑은 소식도 없었다. 오고가는 것만 해도 4일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다.

▲ 하동군 북천면 차인순 엄니. /권영란

◇신랑 없는 시집살이 3년…친정에 가고파

열둘이나 되는 식구들에게 한 끼 밥을 먹이려면 가마솥 한가득 해야 했다. 쌀은 귀했고, 대부분 보리가 식량이었다. 보리는 거칠어서 오후에 찧어 널어놓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몽돌로 찧어야 했다. 그걸 우물에 가서 깨끗이 일어야 보리밥을 지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보리밥은 한번 삶아 바구니에 놔두었다가 다시 밥을 지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도구통에 찧으모는 보리껍디기가 다 안까지거든. 제대로 안허모는 입안이 꺼끌꺼끌해. 식구가 열두서 명이라 밥하는 기 일이었어예. 행님이 밥을 하고 내는 옆에서 시키는 일을 했어예. 밥은 행님이 해도 밥주걱은 어머이가 꼭 쥐고 있었어예. 가마솥에서 밥을 펄 때는 시어머니가 퍼더라고예. 밥 퍼는 거는 절대 행님헌테도 안좄어예."

한 솥을 해도 식구들 밥은 늘 간당간당했다. 양껏 먹어본 적도 없었고 거의 입에 풀칠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밥때를 놓치는 식구는 먹을 것도 없었다. 때가 되어 밥상 앞에 없는 식구들을 위해 밥을 남겨둘 만큼 여유는 없었다.

"먹을 기 어찌나 귀허던지."

그러다가 인순 엄니는 잠시 친정으로 돌아갔다. 신랑도 없는 시집살이가 고단하기도 했지만 시댁 식구들은 피아골로 이사를 가야했다. 거기 길을 내고 도벌을 해서 먹고 살아야했다. 방 두 개짜리 오두막에서 온 식구가 다 살아야 하는데 딱히 새각시한테 내어줄 방은 없었다.

"큰동서 내외가 한 방을 쓰고 시부모랑 시동생들이랑 한 방을 썼어예. 내는 친정에를 왔어요. 신랑이 첫 휴가를 왔을 때서야 피아골 큰집을 간대서 따라 나섰지예. 방이 두 개뿐인데 큰동서 내외가 한 방을 쓰고 시부모 시동생 우리 부부 다 한 방에 잤어예. 겨우 만난 새신랑 새각시한테 한 방을 써라고 내조도 되것더만 끝꺼정 큰동서가 저그 방을 써라고 말을 안 하더라고예. 할 이야기도 많은데…."

10일 휴가래야 속초에서 하동까지 오고가는 것만 4일이니 달랑 일주일 머물기도 힘들었다. 신랑이 휴가를 마치고 군에 들어가고 인순 엄니는 다시 피아골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시집에서는 오전 내내 걸어 연곡사까지 나와야 악양으로 하동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한번은 동생들이 밤 주우러 왔다가 집에 돌아간대서 바래다준다꼬 나와서는 고만 연곡사까지 따라 와삣어예. 동생들 보내고 울며불며 올라갔는데 이미 날은 어둡고 큰동서가 하루점도록 어데 있다 왔냐고 또 머라쿠데예. 방아 찧을 줄도 모른다고 또 머라쿠고 자꾸 흩차삔다꼬…. 베 짤 줄 모른다고 머라쿠고…."

시어머니보다는 큰동서 시집살이가 힘들었다. 그래도 뭣도 모르고 아직 어려 시집살이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언젠가 하동읍내 구경 갔다가 어울려 사진관에 가서 단체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때가 22~23살인가 보다. 어렸을 때부터 동무인 사람도 있고 시집와서 동무가 되기도 하고…. 내는 검은 베르도옷을 입었어. 그때 무늬 있는 거는 더 비쌌어예. 근데 사진을 들여다봐도 우째 친구들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네예. 박 머시기… 음, 아이구 모르것다. 내보다 나이 더 묵은 사람도 있었고…."

시집간 지 한 달도 안 돼 군대 간 신랑은 36개월 18일 만에 제대를 했다.

1970년 초반 북천면 새마을합창단 활동하던 시절이다. 인순 엄니는 앞줄 왼쪽에서 셋째.

◇기술 익혀 독립…그후 북천살이 54년

"제대해서는 친정집이 있는 봉대리 근처로 가서 살았어예. 친정아버지가 철공소 같은 기업을 했거든. 우리 영감도 거기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아버지한테 일을 배웠어예."

몇 년 동안 일을 배워 북천면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에 온 지 올해로 54년이나 된다.

"여기 와서 철공소 했지예. 탈맥기라고 보리 타작하고 벼 타작하는 농기계를 다 제작해서 팔았어예. 직공도 많았고…. 대여섯 명이나 있었으니. 반자동 될 때까지 우리 영감이 다 만들어 팔았어예. 큰소리치게 마이 벌었다아입니꺼."

솜씨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나 먼 데서도 주문이 왔다. 인순 엄니도 덩달아 바빠졌다.

"일꾼들하고 아이들 밥 하는 게 보통 일이라예. 거기에다 어떤 때는 진주까지 심부름을 시켜. 부속품 같은 물건을 내보고 사오라는 둥 아니면 맹근 거를 갖다 주라는 둥 제법 할 일이 있었어예. 많을 때는 트럭에 실어 보내지만 적을 때는 내가 아이를 업고 버스 타고 물건 배달을 해주는 거야. 진주서 북천까지… 안 맞는 거는 바꿔오고. 시간차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떤 때는 심부름이 잘 못 돼가꼬 다시 몇 번이나 댕겨오고…."

이창수 할배는 시간날 때마다 인순 엄니를 오토바이에 태워 전국을 돌아다녔다. 1976년 구례 화엄사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갔었다. 뒷줄 맨왼쪽 헬멧 쓴 사람이 이창수 할배이고, 인순 엄니는 앞줄 오른쪽에서 둘째이다.

북천으로 온 지 몇 해 지나자 살림도 펴이고 여유가 생겼다. 일을 해본 적이 없던 인순 엄니는 세월이 흘러 일솜씨가 늘어 그 많은 식구들, 일꾼들 밥을 하며 장도 열두 동이나 담갔다. 그 즈음에는 신랑이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인순 엄니도 처음에는 무서워했지만 어느새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전국을 다녔다.

"포장도 안 된 도로에 참말로 마이 다녔어예. 열댓 명씩 몰려 다녔는데. 카메라도 메고 댕기고. 내가 막내를 업고도 오토바이 타고 댕깄어예. 비포장 먼지구더기에 사방 그러고 안 가본 데가 없어예. 비포장도로는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모는 난중에는 노랑 사람이 돼 있더라고예."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아이들 학교 어머니회장도 내리 하고 새마을합창단으로도 활동했다. 북천면 합창단이 면 대표로 하동군 합창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

"한복 맞춰 입고 학교서 연습을 했어예. 이때 부르던 노래가…. 기억이 안 나예. 믄 노래를 불렀는지. 북천초등학교 이영희 선생님이 가르쳐줬는데…. 그 선생이 요 밑에 부락에 방을 얻어가꼬 있었는기라. 아가씨였는데…."

인순 엄니는 54년 전 처음 문 연 철공소 그 자리에서 한평생을 살고 있다.

"길가에 철공소가 있었고 뒤로 논이 있었는데 지금은 논 자리에다 이 집을 지었어예. 집 지은 지 20년 넘은 거 같네예. 요서 한평생 참 잘 살았다 싶어요. 큰 욕심 안 부리고 큰 탈 없이."

▲ 하동군 북천면 차인순 엄니와 이창수 할배. 60년 세월을 같이 한 부부는 여전히 다정하다. /권영란

친정아버지를 보더라도 그렇고 남편을 보더라도 기술이 있으니 어디 남한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인순 엄니는 기술을 배울 사람은 기술을 배우고 진짜 공부를 할 사람만 대학을 가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 봐야 사람이 적당히 배우고 다양하게 기술을 배워야지예. 지금은 대학을 가도 잘 산다는 보장이 없고.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사람은 할 마음이 다 있으면 머시든 다 되지예."

인순 언니는 아직도 휴대전화가 없다. 자식들이 연락이 안 된다고 제발 휴대전화를 사자고 하지만, 엄니가 손을 내젓고 있다.

"어디 밖에 나가보니까 좀 불편하긴 해요. 요새는 공중전화도 없더라고예. 쓸데없는 거 낭비라고 생각해예. 집 전화 있지, 영감한테 전화 있지. 그래도 내가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 급한 기 없어예."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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