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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선생 배우기 '쏙쏙' 우리 고장 자부심 '쑥쑥'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 (1)예림서원과 밀양향교
지역 중·고등학생과 함께 서원 등서 퀴즈 풀고 토론
평소 못 했던 '이색 체험'역사·문화·자연 정수 느껴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7년 10월 12일 목요일

대부분 청소년들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를 대단하게 치고 자기 고장은 하찮게 여긴다. 서울·부산에 사는 또래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반면 정작 스스로는 천대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고장이 서울이나 부산보다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자학은 자기 고장을 제대로 모르는 데서 기인한다.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다 보니 자기 고장을 귀하다고 생각지 않고 거기서 자란 자신도 천하게 여긴다. 지역을 알면 지역이 보인다. 지역이 보이면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싹튼다. 지역을 사랑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존중감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8월부터 밀양지역 중·고등학생들과 더불어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를 운영하는 이유다. 밀양시청이 후원하고 밀양교육지원청이 주관하며 경남도민일보는 진행을 맡았다. 밀양에서 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밀양의 역사·문화와 자연이 얼마나 멋있는지 알고 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지역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뜻도 있다.

예림서원 정문 독서루 2층에 오른 동명중 학생들. 뒤로 요즘 도서관에 해당될 법한 장판고가 보인다. /김훤주 기자

밀양동강중(8월 11일), 밀성고(8월 12일), 세종고(8월 14일), 동명중(9월 7일), 미리벌중(9월 25일), 세종중(9월 26일), 밀양여고(10월 14일), 삼랑진고(10월 28일, 12월 16일), 밀양여중(11월 4일) 등 아홉 학교가 함께한다. 탐방 경로는 ①예림서원~밀양향교~월연대, ②표충사~단장천~용회마을, ③삼랑창~삼랑진역~작원잔도 셋으로 잡았다.

밀양은 인물이 많다.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대표적이다. 일제가 백범 김구보다 더 많은 현상금을 걸었던 의열단 김원봉 단장이 밀양 출신임은 이미 상식이다. 게다가 어지간한 시·군은 독립운동가가 열 손가락도 채우기 어렵지만 밀양은 김원봉 말고도 예순에 이른다. 역사 속 인물들의 자취를 듣고 보고 배우면서 사람된 도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친 인물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런 밀양에서도 앞자리에 놓이는 인물이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다. 조선시대 사림(士林)의 조종(祖宗)이라 일컬어진다. '사림의 조종'은 '선비라는 집단을 처음 일으켜 세운 인물'이라는 뜻이다. 김종직 이전에 조정은 훈구세력 차지였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이 되면서 바른 선비들을 내쫓고 죽여버린 탓이다. 요즘으로 치면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의 암흑시대였다. 훈구파는 권력·명예·재산을 거머쥔 기득권 세력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김종직은 사람된 도리를 세우면서 후배들을 길러 벼슬에 나설 수 있도록 힘썼다. 세조 사후 성종·중종 시절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있었다면 그것은 김종직 덕분이다.

밀성고 학생들이 월연대 바로 옆 용연터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뚫어진 이 기차터널은 지금은 간혹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통로로 바뀌었다.

김종직을 위하여 제자들이 밀양에 예림서원을 세웠다. 김종직을 제사지내면서 그 뜻을 따라 공부하는 공간이다. 김종직은 책읽기를 강조했다. 선현들 말씀이 담긴 경전을 열심히 읽어 사람된 도리를 제대로 익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제자들은 이런 정신을 예림서원 정문 현판에 독서루(讀書樓)라고 새겼다. 독서루 2층에 오르면 풍경이 아늑하다.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산기슭이 편안하게 이어진다. 들판이 너르게 펼쳐진 앞쪽은 넉넉한 느낌을 준다. 앞뒤 마당에 심긴 소나무·은행나무·단풍나무들은 우쭐대지도 기죽지도 않고 잘 어울린다.

여기서 '김종직 도전 골든벨!'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김종직 시대의 객관 현실만 다루고 훌륭한 면도 보여준다. 아울러 가리고 싶은 것들도 다룬다. 죽고나서 100년 뒤 허균으로부터 파벌을 조성하고 벼슬에 집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든지, 당대에 유자광을 미워했는데 이유가 미천한 신분 때문이었다든지 등이 그것이다. 이는 어떤 지식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관심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지식은 이미 곳곳에서 넘쳐나는 시대다. 관심이나 애정이 생기면 관련 지식은 자연히 찾아보게 되어 있다.

상식을 배신하고 기대를 허무는 얘기도 넣었다. '김종직이 처음에는 대단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크게 되었다.' ○일까? ×일까? 정답은 ×. 그이는 천재형이었다. '집안이 가난한 악조건을 딛고 큰 인물이 되었다.' 맞을까? 틀릴까? '외가와 처가 덕분에 부유하게 살았다'가 정답이다. '김종직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비판적이었으므로 세조 치하에서는 과거를 보지 않았다.' 정답은?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보아 합격하여 벼슬에 나선 인물이 김종직이었다.

예림서원은 공부공간이면서 제사공간이었다. 서원과 비슷한 것이 향교다. 요즘으로 치면 둘 다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서원은 사립이고 향교는 공립인 점이 다르다. 예림서원을 둘러보고 나서 밀양향교로 걸음을 옮긴다. 밀양향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그럴 듯한 축에 든다. 소나무·은행나무·전나무·배롱나무·향나무들이 멋지고 풍화루·명륜당·대성전을 비롯한 건물도 두루 늠름하다. 향나무는 일제가 민족정기를 훼손하려고 심었다지만 향교는 그조차 배척하지 않고 거느렸다. 소나무·전나무·은행나무는 씩씩한 기상이 곧은 줄기에 가득하고 배롱나무는 아름다움이 여름 내내 붉은 꽃들로 빛난다.

풍화루 2층으로 오른다. 더운 여름에도 바람이 시원한 장소다. 여기서 옛날 공부와 오늘날 공부가 어떻게 다른지 토론을 한다. "옛날에는 사제가 대화를 주고받았고 요즘은 칠판에 적고 받아적어요." 정답이다. "옛날에는 사람된 도리가 무엇인지 주로 공부했지만 요즘은 인성 교육은 적어지고 지식 전달이 많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옛날 효도와 오늘날 효도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질문이 던져지자 "저요!"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옛날에는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이었고 요즘은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요", "옛날에는 몸으로 효도했지만 요즘은 돈으로 효도해요", "옛날에는 아침저녁으로 찾아뵈었지만 요즘은 전화를 자주 드리면 돼요". 다들 맞는 말이다. 자기 삶을 제대로 살면서 앞가림 잘하면 바로 효도다.

사실 이런 세부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림서원 독서루에 올라 김종직의 면모에 대하여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밀양향교를 찾아 풍화루에서 옛날식으로 문답을 주고받은 경험이 중요하다. 밀양의 아름다운 서원과 향교에서 평소 하기 어려운 멋진 체험을 했다는 것이 오래오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후원 : 밀양시청, 주관 : 밀양교육지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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